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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목욕탕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뜨뜻한 탕에 누워 무념무상에 빠지거나 아르키메데스의 목욕을 떠올리며 '유레카'를 외치기 위해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탄산수의 탄산처럼 방울방울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때가 참 좋다. 행복한 목욕이 끝나면 언제나 손바닥과 발바닥이 퉁퉁 불어 쭈글쭈글해진다. 이 쭈글쭈글해지는 정도에 따라 이번에는 얼마나 탕에 들어가 있었는지 가늠해보기도 한다. 지금까지 왜 목욕 후에 손바닥이 뿔어보이게 되는지에 아무런 의구심도 없었다. 무언가가 물에 오래 들어가 있으면 물을 많이 머금고 퉁퉁 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데이비드 J. 린든의 저서 [터치]에서 주름이 생기는 반응이 나타나려면 무의식적이고 자율적인 신경체계인 교감신경계가 활동해야 한다는 글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 교감신경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 손이 쭈글쭈글해지지 않는 다는 것은 이미 1936년에 보고되었다고 한다.[1] 나만 몰랐던 건가? 난 당연히 물에 표피가 뿔어 흐물흐물해진 상태로만 생각했었다. 뭐 여태 몰랐으면 이제 제대로 알면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으로 논문을 좀 더 찾아보았다. 그 중 2004년에 보고된 논문에서 상당히 자세히 이 현상에 대해 설명이 되어있었다.[2] 해당 논문의 내용을 기준으로 여기저기서 읽은 내용과 함께 짧게 설명해보려 한다.


사람의 피부는 털이 있는 피부와 없는 피부로 크게 나뉜다. 털이 없는 피부는 손바닥과 발바닥 및 입술, 생식기(귀두, 소음순) 등이다. 그 중 손바닥과 발바닥에 땀샘이 유독 아주 많다고 한다. (내 손바닥 땀 어쩔 ㅠㅠ) 바로 이 땀샘에 의해 쭈글쭈글해지는 현상이 시작된다. 목욕 시의 물이 땀샘관으로 유입이되고 유입된 물이 땀샘관 주위로 확산하게 된다. 이 때 땀샘관과 그 주위 피부(진피)의 세포내 전해질의 불균형이 유발된다. 전해질 불균형에 의해 신경 섬유(교감신경계)의 반응도가 강해지고 교감신경계의 반응에 의해 주변 혈관이 수축하게 된다. 이렇게 수축된 혈관에 의해 피부 표면의 팽팽함이 사라지고 결국 손바닥은 쭈글쭈글하게 변한다. 교감신경계의 반응에 의해 혈관이 수축되는 것은 실험으로 보고되었으나 왜 전해질 불균형이 교감신경계의 반응을 촉발시키는지에 대한 실험적 검증은 아직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물속에서 혈관 수축이 되어 우리의 손과 발 바닥은 쭈글쭈글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물에 들어가서 뚱뚱 뿔게되는 수동적인 현상이 아닌 물속에서 쭈글쭈글해지도록 교감신경계가 행동하는 능동적인 현상 및 사람의 기능인 것이다. 왜 물이 있을 경우 영장류(원숭이와 침팬지에게서도 확인된 내용이다.)는 손바닥과 발바닥에 주름을 형성하는가? 물이 있는 경우에 물건을 더 잡기 쉽게 하기 위함이라고 대부분이 설명하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은 것 같다. 영장류라 함은 나무에서 생활하기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동물군이기에 비가오는 환경에서 나무에서 좀 더 잘 버티기 위함으로 생각되어진다. 


자 이제 목욕 후에 각자 손바닥과 발바닥을 한 번 보자. 당신은 목욕 후 매끄러운 표면에 더 잘 붙을 수 있는 인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마치 변신 로봇이 된 것 같지 않은가? 손바닥과 발바닥의 교감신경계가 정상 작동하는 변신 로봇이 바로 당신이다.


[1] Lewis, Thomas, and Pickering, G. W., Circulatory Changes in the Fingers in Some Diseases of the Nervous System,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Digital Atrophy of Peripheral Nerve Lesions., Clin. Science (2) 149, 1936

[2] Einar P. V. Wilder-Smith, Water immersion wrinkling: Physiology and use as an indicator of sympathetic function, Clin. Auton. Res. (14) 12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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